사랑하는 자녀가 학교를 졸업한 이우에 적어도 노동 시장에서 소외받지 않고 당당한 사회인으로 자리 잡아가는 데 도움을 주려는 부모의 마음은 다 같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는 엄연히 학벌주의, 학력주의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한국 학부모는 교육에 열을 올리고 해마다 사교육비가 증가한다. 2009년 전국 초ㆍ중ㆍ고 학생의 사교육비 전체 규모는 21조 6,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2008년에는 20조 9,000억 원, 2007년에는 20조 400억 원으로 매년 증가했다. 과도한 사교육은 학생뿐 아니라 부모들도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런데 자녀의 미래에 대한 학부모의 투자가 정말 올바른 전략에 기초했을까?




대졸자들이 매우 선호하는 직장으로 알려진 공기업들의 최근 채용 실태를 들여다보자.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 동안 한국수자원공사 합격자의 출신 대학은 부산대, 한양대, 경북대 순이었다. 서울대는 8위, 고려대는 11위에 머물렀다. 한국전력공사는 같은 기간 동안 전남대, 경북대, 고려대, 연세대 순으로 인력을 채용했고, 서울대는 6위에 머물렀다. 공기업이나 언론사의 입사 전형은 보통 1차 필기시험과 2, 3차 실제 능력 평가로 진행되는데, 1차에서 학벌 중심 채용 관행이 사라졌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비단 공기업만의 변화는 아니다. LG전자는 2009년 신입사원 채용 때 서울대를 졸업한 지원자 500명 가운데 100명을 탈락시켰다. 그 이유는 ‘전공 불일치’였다. 외형적 학벌보다 해당 업무를 잘 해낼 수 있는 전문성을 지녔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 것이다. 또 전경련이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기업들이 서류 전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는 것은 전공(77%)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력은 55%에 머물렀다. 기업들은 이미 새로운 사람을 채용할 때 그 사람의 출신 대학이 아니라 실제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지식과 역량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글로벌 경쟁 환경 속에서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과 채용의 기준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직업의 판도도 변하고 있다. 지금 고소득 전문직으로 꼽히는 변호사, 의사, 한의사, 교사가 15년, 20년 뒤에도 계속 안정된 직업일까? 지금 우리 사회는 ‘개변휴업(개업해도 일이 없는 변호사)’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변호사들 사이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한의사와 교사 역시 과잉 공급되어 있다. 빠른 사회 변화 속에서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그 직종에 진입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해서 10년 뒤에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부모는 아이의 진로와 관련해서 이 같은 직업 세계의 역동적인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이른바 명문대를 나와 고소득 전문직이나 대기업에 안착하면 평생 안정된 삶이 보장될까?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자료에 따르면, 미래사회의 인재란 변화하는 직업 세계에서 버틸 수 있는 튼튼한 기초 역량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그 기초 역량으로 의사소통 기술, 비판적 사고력, 정보 활용 능력, 자기 관리 능력, 학습에 대한 긍정적 자세 등을 꼽는다. 사교육에 의존해 단순 반복 학습을 하는 아이들이 과연 사회의 변화를 성찰하고 자신의 삶과 조직, 사회를 이끌 수 있는 주도성과 창의성, 문제 해결력을 키울 수 있을까? 오로지 학과 공부에만 집중시키는 것은 단지 대학 입학까지만 생각할 뿐, 그 이후 이어질 아이의 긴 생애를 방치하는 근시안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본 내용은 『아깝다 학원비!』(사교육걱정없는세상 지음 / 비아북)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주)북코스모스에서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