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방송국에서 우리나라 10대 청소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청소년들의 실제 생각에 대해 몇 가지 조사를 했습니다. 질문 중에는 이런 항목이 있었습니다.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것은?’ 무슨 답이 가장 많이 나왔을까요? 폭력? 왕따? 시험? 사교육? 입시? 그런데 그런 것들보다 월등하게 많이 나온 답이 있었는데 그것은 ‘학교가 없어져야 한다’였습니다.




웬만한 일에는 잘 놀라지 않는 공상과학형 인간인 나도 그 대답이 많이 놀라웠어요. 나는 대체 청소년들이 왜 그런 대답을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학교가 학생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사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왕따라는 게 없었습니다. 왕따라는 게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일본의 이지메가 우리나라로 건너와 형성되었다는 것은 잘 알 겁니다. 일본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모두 다 같이 파멸한다는 절박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특별히 튀는 사람 없이 자기 몫을 해야 사회가 조화롭게 잘 유지된다는 집단 심리가 있었지요. 그러다 보니 공동체 안에서 자기 몫을 제대로 잘하는 강한 사람은 대접을 받고 약한 사람은 강한 사람들로부터 ‘너희들 때문에 공동체의 조화가 깨지고 있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전통이 있었어요.

공동체 안에서 약한 자는 필요 없다는 무서운 생각이지요. 그래서 나는 비교를 위해 미국문화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미국도 뭐 그리 평화로운 나라는 아닙니다만 인종차별은 있을지언정 일본과 같은 왕따 전통은 없었습니다. 왕따와 같은 의미를 가진 영어로는 불링(bullying)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미국 학교에 자식을 유학 보낸 우리나라 학부모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반적으로 그쪽 학교는 ‘불링’을 걱정할 정도의 분위기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일본 사회가 이지메 전통이 나쁜 것인 줄 알면서도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일본인들이 경제대국은 되었지만 개개인의 자존감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우리나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학생들의 왕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 개개인의 자존감이 높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나는 이렇듯 자존감이 결핍된 청소년들, 그리고 학부모 등 어른들에게 고전 탐험을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서양고전은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소크라테스부터 ‘자기 긍정의 철학자’로 불리는 니체까지 일관된 목소리로 개인의 자존감 발견을 최우선 과제로 발전시켜 왔기 때문입니다. 내가 수능 준비에 바쁜 청소년 여러분에게 굳이 고전 탐험을 권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어떤 경우에도 ‘홀로 서는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좌절이 와도 다시 설 수 있는 힘을 갖는 ‘자기 긍정’의 훈련. 이것이 평생 필요한 진짜 공부라고 이제 어른들은 솔직하게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본 내용은 『고1 책상 위에 서양고전』(김이수 지음 / 명진출판)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주)북코스모스에서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