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기다리기, 엄마의 믿음이 아이를 변화시킨다

매년 1월 1일이 되면 저희 가족은 해돋이를 보러 떠납니다. 특히 2010년은 색다르게 바다가 아닌 송암천문대에서 새해 첫 해를 맞이했어요. 저희 가족은 새벽 다섯 시 긴 파카에 몇 겹의 옷을 겹쳐 입고, 그것도 모자라 차 안에서 이불까지 어깨에 두르고는 서로를 보며 킥킥 웃어댔습니다.

저와 아이들은 자리를 잡고 ‘해돋이’란 영화가 상영되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추위에 놀란 아이들은 연신 투덜거렸습니다. “엄마, 너무 추워요. 해 언제 떠요? 동해바다에서는 해가 금방 떴었는데.” 아이들의 지친 표정을 보자 슬슬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것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드디어 동쪽 하늘에 붉은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곧 해의 동그랗고 붉은 얼굴을 볼 수 있겠지! 저뿐 아니라 모두의 얼굴에 똑같은 기대감이 흘러넘쳤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외침에 놀라서 숨어버리기라도 한 듯 해는 붉은 기운만 내보낸 채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 겁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 불안하고 초조하기만 했습니다.

도저히 못 참겠는지 아이들과 주변 사람들은 실내 대기실로 꽁무니를 빼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웬일인지 저는 들어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뜨나 안 뜨나 두고 보자!‘ 괜한 오기가 발동하기도 하고, 이젠 얼굴을 좀 보여달라고 마음속으로 사정해 보기도 했습니다.

두 시간가량이 더 지났을까. 해가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기는 게 아니겠어요. 가슴에서 솟아나는 눈물이었습니다. 꽁꽁 언 몸을 순식간에 녹일 만큼 뜨거운 눈물이었어요. 터져 버린 화산의 분화구마냥 눈물을 멈추려 해도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끝까지 기다려 준 제게 확신을 안겨준 태양을 보며 저는 제 아이들을 생각했답니다. ‘우리 아이들도 저 산에 떠오른 태양 같으리라.’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것입니다. 탄탄한 계획표에 맞춰 움직이고, 좋은 문제집을 사서 공부시켜도 아이의 실력은 늘 제자리인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한 심정을 요. 유명한 학원을 보내도 엄마들의 마음은 안심이 되지 않습니다. 옆집 아이는 더 좋은 학원을 다니나? 엄마들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생기는 의문들이지요.

하지만 이런 조급한 때문에 우리 엄마들이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다림’입니다. 아이가 수학문제를 풀다 헤맬 때, 엄마들은 아이가 못 풀지도 모른다는 조급함 때문에 나서서 도와주지요. 아이를 뱃속에 넣고 열 달이라는 긴 시간도 기다려 놓고는, 고작 수학문제 하나 푸는 시간을 못 기다려서 온갖 비극적인 상상을 하는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포기하는 쪽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였던 겁니다.

저는 그날의 일출을 보며 조바심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게 되었답니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믿음과 기다림이었던 겁니다. 금세 얼굴을 보여주는 동해바다의 태양과 지치도록 오래 기다리게 만드는 산 정상의 태양, 둘 중 어느 쪽이 우리 아이들의 모습일까요?

아이의 모습이,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금방 떠오르는 동해바다의 태양이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추운 산 정상에서 애타게 기다려야 떠오르는 천문대의 태양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떤 게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그저 우리 엄마들은 아이들을 끝없이 믿어주고,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산 너머에서 떠오르기 위해 애쓰고 있을 우리 아이들을 믿음으로 지켜봐 줄 수만 있다면, 아이들은 이내 완전히 떠올라 눈부신 모습을 보여주리라 믿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줄 때까지 우리 부모들이 굳건한 믿음으로 아이들을 응원하고 기다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본 내용은 『생각하는 아이 기다리는 엄마』(홍수현 지음 / 국일미디어)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주)북코스모스에서 제공합니다.